2013년 7월 14일 교회설립 7주년 기념주일 설교
고린도전서 2:6-16
사람들은 수많은 방법과 구도를 통하여서 구원의 길을 찾고자 했습니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앞으로도 불가능합니다. 구원은 오직 하나님으로 말미암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왜 사람들은 포기하지 않고 찾으려고 할까요? 이러한 사실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구원은 하나님께서 예정하신 십자가의 도에 의해서만 가능합니다. 또한 이러한 사실은 오로지 성령을 통해서만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구원은 하나님의 지혜가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사람은 하나님의 지혜가 없기 때문에 여전히 자신들의 지혜로 구원을 찾고 있는 것입니다.
6절에 “그러나 우리가 온전한 자들 중에서 지혜를 말하노니 이는 이 세상의 지혜가 아니요 또 이 세상의 없어질 관원의 지혜도 아니요”라고 했습니다.
바울이 고린도서를 쓴 이유는 고린도 교회에 인간적인 지혜가 넘치기 때문입니다. 교회에서 인간적인 정과 이익을 위하여서 서로 서로 당을 만들고 파벌을 만들어 분열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지혜가 없는 사람들의 행동입니다. 또한 아직도 하나님의 지혜를 깨닫지 못하는 미성숙한 교인들이기 때문입니다. 지상 교회 안에는 영적이지 못하고 육적인 사람도 있습니다. 그들의 목소리가 커지면 교회는 혼란스럽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못하는 방향으로 가게 됩니다. 또한 영적인 사람이라 하더라도 성숙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미성숙한 사람도 있습니다. 아직 온전한 신앙인의 모습으로 자라지 못한 사람이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저들의 무지한 행동으로 인하여 교회가 분열되기도 하는 것입니다. 성숙한 신자들은 육적인 사람들의 선동에 넘어가지 않고 오히려 더욱 교회를 중심으로 하나가 되며 기도하지만, 미성숙한 신자들은 육적인 사람들을 따라 시기하고 분쟁하며 교회를 해하는 일에 휩쓸리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이 세상의 지혜’, ‘이 세상의 없어질 관원의 지혜’는 고린도 교회를 혼란에 빠트리는 악한 세대의 지혜를 말합니다. 그 지혜는 하나님께 대하여 반역하는 지혜입니다. 신본주의가 아니라 인본주의를 말합니다. 교회를 중심하지 않고 나를 중심하는 지혜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생각하지 아니하고 내 가정과 내 앞길만 생각하기 때문에 교회가 혼란스러운 것입니다. 정확하게 마귀가 원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사도 바울은 정확하게 지적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지혜는 결국 ‘없어질 관원의 지혜’라고 말입니다. 스스로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놀라운 능력이 마지막 승리를 가져오기 전에 하나님의 심판으로 인하여 소멸되는 것입니다. 이집트의 지혜가 사라졌습니다. 바벨론의 권세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습니다. 강대국 로마의 놀라운 지혜는 지금 어디에도 없습니다. 하지만 사도 바울이 말한 ‘하나님의 지혜’는 지금도 저와 여러분의 심령을 사로잡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도록 인도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지혜는 모두에게 알려진 것이 아니라 비밀한 것이며, 만세 전에 우리를 위하여 예비하신 것입니다.
7절에 “오직 비밀한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지혜를 말하는 것이니 곧 감취었던 것인데 하나님이 우리의 영광을 위하사 만세 전에 미리 정하신 것이라”고 했습니다.
‘비밀’이란 ‘감춰진 것’을 말합니다. 창세전에 예비 되었으며 오랜 시간 동안 감춰졌다가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의 사건으로 인하여 택자에게 알려진 ‘복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앞선 2절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다’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바로 감춰진 ‘하나님의 지혜’이기 때문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온갖 신기한 상상과 논리로 무장하여 사람을 현혹시키려 하지만 그러한 것은 결국 사라지고 없어질 ‘이 세상 관원들의 지혜’입니다. 하지만 영원히 변하지 않는 하나님의 지혜는 우리를 그의 영광으로 인도하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십자가만 전했다는 말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지혜’는 ‘만세 전에 미리 정하신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 세상이 창조되기 전에 이미 존재하셨다는 말씀입니다. 따라서 인간을 구원하여 천국으로 이르게 하는 이 놀라운 비밀인 ‘하나님의 지혜’는 절대로 사람들의 논리나 상상에서 존재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 이름 외에는 구원이 없으며, 예수 십자가 외에는 구원으로 이르는 길이 없는 것입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은 참 감사하게도 이러한 ‘하나님의 지혜’를 알고 있는 자들입니다. 우리의 논리나 이성적인 사고로 알고 깨닫고 믿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우신 섭리를 통해서 믿는 자들이 되었습니다. 그 결과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인 것이 믿어지며,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나의 죄를 위하여서라는 고백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도 나에게 임한 구원에 감사하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영광된 길을 가게 되는 것입니다.
1. 하나님의 지혜는 세상의 지혜가 아닌 오직 성령을 통하여만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지혜’는 아무나 알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8절에 “이 지혜는 이 세대의 관원이 하나도 알지 못하였나니 만일 알았더면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못박지 아니하였으리라”고 했습니다.
‘이 세대의 관원’들은 이러한 ‘하나님의 지혜’를 몰랐습니다. 만약에 알았다고 한다면 메시야로 오신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지혜’는 세상의 지혜로 깨닫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지혜’는 비밀하게 감추어진 것이기 때문에 세상의 관원들이 알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지혜’에 대하여 알지 못하는 자들은 필연적으로 하나님께 대한 반역의 길을 가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바로 그 대표적인 사건입니다. 저들이 ‘하나님의 지혜’에 대하여 알았다면 영광의 주님이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지 않았을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도 이러한 ‘하나님의 지혜’가 없었더라면 영광의 주님을 십자가에 못박는 참람한 자들이 되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는 이러한 어리석은 길을 가지 않게 되었습니다. 성령을 통하여 ‘하나님의 지혜’를 깨닫게 해주셨기 때문입니다.
9절에 “기록된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도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도 생각지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를 위하여 ‘예비하신’ 것이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눈으로도 볼 수 없고, 귀로도 들을 수 없고, 마음으로도 생각할 수 없었던 놀라운 ‘하나님의 지혜’이지만 하나님께서 성령을 통하여 우리에게 알려주셨습니다.
10절에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하시느니라”고 했습니다.
세상의 어느 누구도 알지 못하고 이 세대의 관원들도 알지 못하는 ‘하나님의 지혜’가 ‘우리에게’는 알려졌습니다. 선지자나 사도들 뿐 아니라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알려졌습니다.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우리에게 보이셨’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특권이 예수 믿는 저와 여러분들에게 주어졌습니다. 어떻게 이러한 영광스러운 일이 우리에게 일어난 것입니까? 성령은 왜 우리에게 이 놀라운 ‘하나님의 지혜’를 전해 주었을까요? 바로 그것이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하시느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지혜’를 선택받은 우리에게 알려주시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성령은 하나님의 영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아는 유일한 영입니다.
11절에 “사람의 사정을 사람의 속에 있는 영 외에는 누가 알리요 이와 같이 하나님의 사정도 하나님의 영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느니라”고 했습니다.
이러한 표현은 성령의 하시는 뜻은 완전히 견고한 하나님의 뜻임을 알려주는 것입니다. 즉 성령에 의하여 전해지는 구원의 복음은 하나님의 뜻을 대변하는 확실한 진리이기 때문에 교회는 인간적인 방법이나 세상의 흐름을 따르지 아니하고 오로지 성령께서 행하시는 방법대로 순종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교회에 이러한 성령의 방법이 아닌 인간적인 방법들이 너무나 많이 있습니다. 그 결과 온갖 종류의 문제들이 넘쳐나고 있습니다. 교회는 세상의 권력이나 지위를 가지고 움직이는 곳이 아닙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성령의 역사하심에 따라 모두가 겸손하게 낮아져서 섬기는 사람들이 모인 곳입니다. 따라서 교회에서는 내 생각, 내 방법, 내 입장은 철저하게 배격해야 합니다. 오로지 성령께서 말씀하시는 음성을 듣고 그 음성이 하나님의 뜻임을 고백하며 순종하여 자신을 죽여야 합니다. 내 생각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내 주장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그래야 성령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사람도 사람의 생각을 다 알지 못하는데 하물며 죄인인 인간이 어찌 하나님의 마음과 생각을 알 수 있겠습니까! 오로지 성령의 역사하심으로만이 하나님의 뜻을 짐작할 수 있으며, 그 뜻에 전적으로 순종하며 교회 생활을 감당할 때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가 있는 것입니다.
2. 성도는 성령을 통하여 하나님의 지혜를 깨닫게 된 자들입니다.
12절에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고 했습니다.
이 세상에 살고 있는 신자는 ‘세상의 영’을 받지 않고 ‘하나님께로 온 영’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러한 권면을 통하여 교회 안에서 ‘세상의 지혜’로 사람들을 평가하고, 교회의 일들을 하려고 하는 추태를 그만 둘 것을 권고하는 것입니다. 교인은 하나님의 지혜를 받은 사람들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지혜를 받은 사람들이 모인 곳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교회에서 하나님의 지혜가 아닌 세상의 지혜가 주장한다면 필연적으로 분열이 생기고, 당파가 생기며,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신자는 오늘 바울의 권면처럼 ‘하나님께로 온 영’을 받은 사람답게 하나님께서 ‘은혜로 주신 것들’을 깨닫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은혜로 주신 것들’은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을 믿는 이에게 거저 주신 하나님의 선물을 말합니다. 성령을 통하여 알게 하여 주신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십자가를 생각하면 나를 위해 돌아가신 예수 그리스도를 기억하고 올바르게 살아야 하겠다는 마음이 드는 것, 그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은혜로 주신 것들입니다. 십자가를 생각하면 나의 죄가 생각나고 십자가를 생각하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구원하신 은혜가 감사하고, 십자가를 생각하면 이제는 이 기쁜 진리의 복음을 전해야겠다고 결심하게 되는 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신자인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온갖 종류의 고난에도 불구하고 십자가와 부활의 도를 전하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비록 내 생각과 이성의 사고로는 이해되지 않는 현실이 닥쳐와도 하나님의 뜻과 지혜가 더 올바르다는 것을 알고 묵묵히 인내하며 하나님 편에 서 있는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입니다.
13절에 “우리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사람의 지혜의 가르친 말로 아니하고 오직 성령의 가르치신 것으로 하니 신령한 일은 신령한 것으로 분별하느니라”고 했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에 대하여 증거 할 때에 사람의 지혜로 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성령의 가르치신 것으로만 해야 합니다. 그래서 교회에는 인간적이고 세속적인 방법이나 논리가 들어와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신령한 일은 신령한 것으로 분별하느니라’고 했습니다. 즉 ‘성령이 계시한 것은 성령이 가르쳐준 말들로 표현한다’는 뜻입니다. 성령께서 하나님의 지혜를 알게 하셨을 뿐만 아니라 그 놀라운 지혜를 성령에 의하여 감동된 말로 설명하고 표현할 수 있게 해주신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신자인 우리는 오직 성령에 의해서만 십자가의 복음을 깨달을 수 있고, 성령에 의해서만 그것을 효과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당시에도 오늘에도 유행하는 온갖 종류의 세속적인 철학과 수사학에서 비롯된 인간적인 지혜로 하나님의 지혜를 설명하려 하거나 왜곡하려 하는 것에 대하여 강력하게 경계해야 하는 것입니다. 4절에서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지혜의 권하는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 하여’라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이 설교할 때에 그가 가진 수사학이나 웅변으로 치장하거나 꾸미지 않고 오로지 성령께서 알게 하시는 것으로만 전하였다는 고백입니다. 교회에서 세상이 주는 재미와 감동을 찾으려 하면 안 됩니다. 그러한 재미와 감동과 교훈은 세상에서 얼마든지 얻을 수 있습니다. 물론 그러한 재미와 감동과 교훈은 이 세상에서 사는 동안에는 의미가 있을지 몰라도 구원과는 관계가 없습니다. 따라서 교회는 오로지 성령께서 주장하는 것을, 성령께서 알려주시는 방법대로 전해야 합니다. 그러면 성령의 능력이 모든 신자들에게 나타나서 구원으로 인도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교회 안에 있다 하더라도 영적이지 못하고 육적인 사람들은 이러한 방법을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성령의 방법이 미련하게 보이고 이해하지 못합니다.
14절에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을 받지 아니하나니 저희에게는 미련하게 보임이요 또 깨닫지도 못하나니 이런 일은 영적으로라야 분변함이니라”고 했습니다.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영으로부터 빛과 진리를 받지 못하여 죄악된 상태 그대로 있는 사람을 말합니다. 이들은 ‘성령의 일’을 받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로 주신 선물을 받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예배를 통하여 받는 은혜와 감사와 기쁨을 이상하게 바라봅니다. 영적으로 죽은 자이기 때문입니다. 앞을 볼 수 없는 자가 빛을 볼 수 없는 것은 빛이 없기 때문이 아니라 자신이 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소리를 들을 수 없는 자가 찬송을 들을 수 없는 것은 찬송이 없기 때문이 아니라 듣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하나님께 예배하는 동안에 은혜와 감격이 없는 것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와 감격이 없기 때문이 아니라 그 사람이 영적으로 죽은 상태이기 때문에 은혜와 감격을 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들은 항상 교회에서 메말랐습니다. 감격이 없습니다. 당연히 감사도 없습니다. 매사에 불평과 불만입니다. 이래서 안되고, 저래서 안되는 말만 합니다. 자꾸 세상의 지혜와 방법을 말합니다. 영적으로 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저희에게는 미련하게 보임이요’라고 했습니다. 당연합니다. 세상의 가치로 평가하니 하나님의 아들이 십자가에 달려 인류를 구했다는 하나님의 위대한 지혜가 우둔하고 미련하며 가치 없는 일로 보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영적으로라야 분변함이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영으로만 ‘하나님의 지혜’를 깨달을 수 있다는 말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오늘 예배를 통하여 대속의 감격을 고백하고 감사함으로 이 세상을 향하여 나아갈 수 있는 것은 성령께서 주신 ‘하나님의 지혜’가 있기 때문입니다.
15절에 “신령한 자는 모든 것을 판단하나 자기는 아무에게도 판단을 받지 아니하느니라”고 했습니다.
‘신령한 자’는 ‘성령께서 내주하시는 영적인 사람’, ‘성령으로 거듭난 새 생명의 사람’을 말합니다. 이러한 사람은 성령의 조명하심으로 인하여 모든 영적 진리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또한 무엇이 영적이고, 무엇이 세상적인지를 잘 판단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성령의 조명하심으로 인하여 더 이상 세상의 지혜나 방법에 미혹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거룩하고 성결한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자기는 아무에게도 판단을 받지 아니하느니라’는 말은 ‘신령한 자’는 ‘육에 속한 사람’에게 영적인 것에 관하여 판단 당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세상에서 아무리 뛰어나고 업적을 남긴 영웅적인 인물이라 하더라도 성령의 조명하심이 없다면 하나님의 놀라운 구원계획에 대하여 도저히 알 수 없습니다. 그래서 그러한 자들로 인하여 ‘신령한 자’인 우리가 하는 하나님의 일에 대하여 이렇다 저렇다 판단 받을 수 없다는 말입니다. 따라서 ‘신령한 자’는 영적인 자부심을 가지고 세상을 향하여 하나님의 위대한 진리를 오직 하나님의 방법대로 전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16절에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아서 주를 가르치겠느냐 그러나 우리가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졌느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누구도 감히 측량할 수 없는 지혜로 인간의 구원을 이루셨습니다. 죄인인 인간들 가운데 그 어느 누구도 십자가를 통한 구원의 복음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졌다고 했습니다. ‘그리스도의 마음’은 ‘성령’을 가졌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신령한 자’인 우리는 그 성령에 의하여 계시된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셔서 십자가와 부활이라는 방법을 통하여 인류 구원의 놀라운 일을 하셨는가를 알 수 있다는 말입니다. 세상의 그 어떤 자들이 이 놀라운 하나님의 방법에 대하여 비웃고 조롱하며 판단해도 흔들리지 않고 오히려 그들을 위하여 기도하는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
세상은 알 수 없는 ‘하나님의 지혜’를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성령을 통하여 우리로 하여금 깨닫게 해주셨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신비한 일을 통하여 우리는 잠잠하게 있을 수 없습니다. 주님께서 하신 일들을 세상에 전해야 합니다. 물론 그 방법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대로 해야 합니다. 또한 그 일을 하는 중에 저들의 비판과 조롱에 위축될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저들은 ‘육에 속한 자’로서 ‘신령한 일’을 전혀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지혜’는 ‘하나님의 지혜’를 깨닫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신비한 경륜을 따라 선택 받은 ‘신령한 자’인 우리는 ‘하나님의 지혜’만을 가지고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구원을 선포해야 합니다. 세상의 힘과 지혜를 본받지 말고 하나님께서 성령을 통하여 주신 ‘하나님의 지혜’를 따라 오늘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아가는 경향의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경향교회박동순권사
반갑습니다. 권사님! 비록 멀리 계시지만 이렇게 함께 기도하며 은혜를 나누어 주시니 감사합니다. 항상 평안하고 즐거운 사명자의 길을 가시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