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중심, 성경 중심, 교회 중심

여호와께서 나타나사!

Posted on 16 Jun 2013, 설교자: 김동관 목사 (Kim, Dong Kwan)

2013년 6월 16일 주일예배 설교
열왕기상 9:1-9

솔로몬하면 일반 사람들은 현명한 왕, 즉 두 여인의 송사에서 아이의 어머니를 정확하게 구분한 재판의 당사자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솔로몬하면 여호와를 위한 성전을 건축하여 봉헌한 왕의 이미지가 먼저 떠오릅니다. 열왕기상 8:22~53에는 솔로몬이 성전 건축을 마치고 여호와 하나님께 봉헌기도를 드리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기도에 여호와 하나님께서 나타나셔서 응답하시는 부분이 바로 오늘의 본문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유의해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8장에서 솔로몬의 기도가 기록되고 바로 이어진 9장에서 여호와의 나타나심이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인해서 우리가 시간적으로 금방 응답하신 것처럼 생각됩니다. 하지만 솔로몬의 기도와 여호와의 응답에는 적어도 13년 이상의 시간이 존재하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처럼 솔로몬의 봉헌기도에 즉각적으로 응답하시지 않고 많은 시간이 흐른 후에 과거의 언약을 다시 상기시키는 방식으로 나타나신 것은 분명한 뜻이 있으시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솔로몬왕과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신들에게 주어진 성공과 번영으로 인하여 교만해져서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게 될 우려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본문에 기록된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은 더욱 분명하게 언약에 대한 순종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솔로몬의 왕국에 대하여 무조건적인 축복을 보장하지 않으셨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에 순종하며 그 법도와 율례를 지키면 복을 받고 그 왕국이 장구하게 될 것이지만 그렇지 않고 여호와의 말씀에 불순종하고 그 법도와 율례를 무시하면 심판을 받고 온 세상에서 웃음거리가 될 것임을 말씀하셨습니다.
솔로몬과 이스라엘 백성에게 있어서나 오늘 말씀을 듣는 우리 신자들에게는 솔로몬이 지어서 봉헌한 여호와의 전이나 이스라엘 왕국의 강성함은 첫째 목적이 아닙니다. 이 말은 역시 오늘날 우리에게도 화려한 업적이나 세상에서 주목받는 성공적인 삶이 인생의 목적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우리는 솔로몬과 성전 건축을 연계시키면 안 됩니다. 솔로몬이 하나님의 계명을 자신이 사는 동안 끝까지 지켰는지 그렇지 않은지에 대하여 유의하여 말씀을 묵상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눈에 보이는 성전의 화려함과 왕국의 번영에 치중하다보면 보다 중요한 여호와의 계명을 지키는 본래의 목적을 잊어버릴 위험이 있습니다. 실제로 솔로몬은 성전을 건축하고 그 전을 하나님께 봉헌한 위대한 왕으로만 인식하는 신자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실은 솔로몬이 수많은 이방나라의 여자들과 혼인하는 정략적인 일들을 통해서 여호와의 계명을 어기고 우상을 숭배하는 죄를 저질러서 왕국이 분열되는 참혹한 실패를 저지른 인생이라는 사실은 쉽게 떠올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열왕기서의 저자를 통하여 이러한 사실을 분명하게 우리에게 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솔로몬이 화려하게 인생의 성공시대를 달려가는 것처럼 보였지만 결국 여호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지 않으므로 인하여서 몰락하고 말았다는 것을 분명하게 알려주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신자는 성공합니다. 예수 믿고 복 받습니다. 하지만 그 성공과 복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를 정확하게 아셔야 합니다. 여호와의 계명을 지키고 겸손히 말씀을 묵상하며 순종의 걸음을 걸어가는 자는 성공한 것이며 복을 받은 자가 됩니다.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세상에서의 위치나 상황과는 전혀 관계가 없습니다. 반대로 세상에서 이름을 날리고 모든 사람이 부러워하는 위치에 있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지 아니하고 그 법도와 율례를 무시한다고 한다면 그 사람은 실패한 인생이며 재앙을 받은 인생입니다. 이 판단은 오로지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오늘 솔로몬의 기도에 응답하기 위하여 나타나셔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다시 한 번 여호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신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1. 여호와께서 나타나시는 이유는 택한 백성인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여호와께서 솔로몬의 기도에 응답하여 나타나셨습니다. 그런데 그 시기는 앞서도 말씀드렸듯이 솔로몬의 봉헌 기도 후 13년이 지난 시점입니다. 여호와의 전을 건축한 후일 뿐 아니라 왕궁 건축과 그 밖의 모든 건축이 이루어지고난 후입니다.
1절에 “솔로몬이 여호와의 전과 왕궁 건축하기를 마치며 자기의 무릇 이루기를 원하던 일이 마친 때에”라고 했습니다.
여호와의 전과 왕궁 건축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자기의 무릇 이루기를 원하던 일이 마친 때에’라는 표현을 주목해야 합니다. ‘원하던’이라는 말은 강한 집착과 열정을 의미합니다. 즉 솔로몬이 한 나라의 왕으로서 이루기를 원한 사업이나 업적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경제개발’, ‘대북사업’, ‘뉴딜정책’과 같은 업적은 당시의 대통령이 심혈을 기울여서 추진한 것이며 그 정책의 성공은 곧 그 대통령의 업적으로 인정을 받습니다. 이와 같은 의미의 각종 사업을 말하는 것입니다. 솔로몬에게 있어서 성전 건축과 왕궁 건축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바로 국고성과 병거성과 마병의 성과 같은 것이기도 합니다. 또한 한 나라의 기틀을 이루는 기간산업의 활성화와 외교적 노력을 의미하기도 할 것입니다. 이러한 기록은 솔로몬이 그만큼 열정을 가지고 일을 했다는 뜻이 되지만 한편으로는 그러한 외적인 노력에 비하여 여호와의 명령을 지키는 일에 대하여서는 상대적으로 소흘해졌다는 뉘앙스도 있습니다. 따라서 그러한 시점에 여호와께서 나타나셔서 다시 한 번 솔로몬에게 당신과 맺은 언약을 상기시켜 주심으로 올바른 길로 걸어갈 수 있도록 해 주시는 것입니다.
2절에 “여호와께서 전에 기브온에서 나타나심 같이 다시 솔로몬에게 나타나사”라고 했습니다.
‘전에 기브온에서 나타나심과 같이’라는 표현은 이전에 여호와께서 솔로몬에게 나타나신 적이 있다는 말이 됩니다. 열왕기상 3:5~15절에 그 내용이 나타나있는데 우리가 잘 알고 있습니다. 솔로몬이 일천번제를 마친 후에 여호와께서 꿈으로 나타나셨습니다. 그리고 무엇을 구할 것인가를 물었을 때에 솔로몬이 지혜를 구함으로 큰 칭찬과 함께 많은 축복을 받았습니다. 이 때에는 그 어떤 부정적인 요소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동일한 장소에서 동일한 방법으로 나타나셨는데 그 내용은 이전과는 많이 달랐습니다. 긍정적인 부분도 있지만 경고의 메시지가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이는 그 당시의 솔로몬의 자세와 지금의 마음가짐이 많이 변했기 때문입니다. 수많은 치적과 계속되는 성공적인 일로 인한 외적인 풍요로 인하여서 그 심중에 여호와의 계명을 대하는 태도가 변했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변화를 가장 먼저 예견하시고 아시는 하나님께서 이렇게 다시 나타나셔서 경고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솔로몬을 사랑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고 계십니다. 눈동자처럼 지키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알기도 전에 먼저 아셔서 절망과 타락의 길로 가지 아니하도록 나타나셔서 가르쳐 주시고 돌이키도록 권면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계명을 지키면 복을 받고, 그렇지 않으면 벌을 받는다!’는 말은 신자이면 누구나 알고 있습니다. 어린아이들이 엄마, 아빠 말을 들으면 칭찬받지만 말을 듣지 않으면 벌을 받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듯이 말입니다. 하지만 문제는 그러한 법을 잊지 않고 실천하느냐가 중요합니다. 우리들은 자녀들을 24시간 보호하지 못합니다. 그들의 마음속의 변화도 알지 못합니다. 또한 알더라도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하여서 제대로 가르쳐 주지 못하거나 지나칩니다.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우리가 한계성을 가진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렇지 않습니다. 완벽하신 분이시며 우리를 머리털하나 세신바가 되십니다. 따라서 오늘 솔로몬의 마음과 태도의 변화를 먼저 아시고 경고하여 주시는 것처럼 우리를 지키시고 보호하시며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이보다 완벽한 사랑이 어디에 있습니까?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창조주 하나님이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의 세세한 것까지 지키시고 인도하시며 간섭하신다는 사실에 진실로 감사해야 합니다. ‘왜 저렇게 했던 말을 반복하고, 자꾸 경고하는가!’를 생각하기 이전에 이처럼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알고 감사해야 합니다.
그러한 하나님의 사랑은 무한하십니다. 인간 솔로몬이 지은 건축물에 자신을 가두기까지 하시는 사랑이십니다.
3절에 “저에게 이르시되 네가 내 앞에서 기도하며 간구함을 내가 들었은즉 내가 너의 건축한 이 전을 거룩하게 구별하여 나의 이름을 영영히 그곳에 두며 나의 눈과 나의 마음이 항상 거기 있으리니”라고 했습니다.
솔로몬의 성전은 참으로 대단한 건축물이었습니다. 당시의 모든 기술력과 화려함이 집약된 구조물이었습니다. 누가 봐도 찬사와 감탄으로 가득한 건물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여러분! 온 우주의 창조주이신 하나님의 영광 앞에 그 건물이 도대체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며 감탄하실 가치가 있을까요? 전혀 없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께서는 솔로몬이 건축한 전을 거룩하게 구별하여 주셨습니다. 그리고 당신의 이름을 영영히 그곳에 두신다고 하셨습니다. 왜 그러셨을까요?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자녀가 만든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부모로서 자녀들의 각종 학예회나 작품 전시회에 갑니다. 서툰 연주와 노래, 엉성한 작품에도 불구하고 할 수 있는 최상의 찬사로 아이들을 격려합니다.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지금 여호와께서 솔로몬의 건축한 전을 그렇게 축복하고 계시는 이유는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신의 성호와 눈과 마음을 그 구조물에 가두시기까지 하시는 것입니다. 좋은 집을 놔두고 어린아이가 만든 장난감집에서 먹고 자고 하는 부모의 심정인 것입니다. 그만큼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을 사랑하십니다.
‘네가 내 앞에서 기도하며 간구함을 내가 들었은즉’이라고 했습니다. 솔로몬이 13년 전에 성전을 봉헌하여 드린 기도를 들으셨다는 말입니다. 어떤 심정으로 성전을 건축하였으며, 그 성전을 통하여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다짐하는 기도와 간구를 하나님께서 들으셨고 기억하고 계신다는 말씀입니다. 좋은 부모는 자녀의 말을 기억합니다. 자녀의 꿈을 기억하며 그 꿈을 이루도록 도와줍니다. 솔로몬이 당시에 드린 기도의 본심을 하나님께서는 아시기 때문에 그 지은 전을 거룩하게 구별하셨으며 자신의 성호와 마음을 그곳에 두신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이 진실한 마음으로 간구하며 기도한 내용들을 다 기억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그 기도를 잊어버리거나 본래의 마음이 변질되고 세상과 타협하여 그릇된 길로 가고 있습니다. 따라서 그러한 우리들을 본래대로 돌이키어 회복케 하시려고 여호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나타나시는 것입니다. 그 나타나심의 본질이 사랑이라는 것을 분명히 기억하시고 그 사랑에 올바르게 응답하여 장구한 축복을 누리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2. 여호와께서 나타나시는 이유는 택한 백성인 우리를 올바른 길로 인도하시기 위함입니다.

우리를 사랑하셔서 나타나신 여호와께서는 모호한 말씀이 아니라 분명한 말씀을 통하여 참되고 바른 길로 인도하십니다. 그 말씀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그 법도와 율례를 지키라고 하셨습니다.
4~5절에 “네가 만일 네 아비 다윗의 행함 같이 마음을 온전히 하고 바르게 하여 내 앞에서 행하며 내가 네게 명한 대로 온갖 것을 순종하여 나의 법도와 율례를 지키면 내가 네 아비 다윗에게 허하여 이르기를 이스라엘 위에 오를 사람이 네게서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한 대로 너의 이스라엘의 왕위를 영원히 견고하게 하려니와”라고 했습니다.
‘내 앞에서 행하며’라고 하셨습니다. ‘코람데오’의 신앙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인정하고, 무소부재하심을 확신하여 언제나 하나님의 통치만을 겸손히 받아들이는 신자의 자세를 말하는 것입니다. 다윗이 그렇게 행하였다고 했습니다. 비록 다윗이 흠이 없거나, 범죄 하지 않은 의인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항상 그 삶의 중심에 ‘여호와 앞에서’의 신앙으로 살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인정하신 것입니다. ‘여호와 앞에서 행하는’ 신앙은 사람에게 인정받거나, 사람의 눈치를 보는 외식적이고 거짓된 모습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며,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그 어떤 환경과 고난 속에서도 전심전력하는 진실하고 거룩한 모습을 말합니다. 그렇게 사는 신자는 여호와의 법도와 율례를 지킵니다. 그 마음이 온전하고 바릅니다. 왕이기에 교만하지 않고, 거지라서 비루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모습과 환경과는 전혀 상관없이 오로지 하나님만 바라보며 그 분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최선을 다합니다. 그렇게 살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복을 주십니다.
‘끊어지지 않고, 견고하게 하신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면 다윗의 혈통을 이어받은 솔로몬의 왕위가 자자손손 대대토록 끊어지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법도와 율례를 지키면 그 왕위가 견고하여 진다고 하셨습니다. 이보다 더 명확한 명령은 없습니다. 숨은 의도나 모호한 의미가 없습니다. 너무나도 분명합니다. 누가 봐도 동일하게 이해하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수많은 주술가나 예언자라고 자처하는 자들의 모호한 말과는 다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명령은 택한 백성, 사랑하는 백성을 올바른 길로 인도하는 단 한 가지의 목적을 위해서이기 때문입니다. 교묘한 말장난이나 모호한 의미를 가진 단어를 선택하여 백성을 혼란스럽게 함으로 그들이 잘못된 길로 가면 벌하려고 하심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다윗의 아들 솔로몬도 다윗처럼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고 법도와 율례를 지킴으로 그 왕권이 견고하여지고, 영원히 끊어지지 않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지금 자칫 교만하고 타락할 위험이 있는 결정적인 순간에 나타나셔서 다윗과 맺은 언약을 다시 한 번 상기시킴으로 솔로몬이 올바른 길로 가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어지는 본문에서 그렇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 지를 분명하게 경고하고 계십니다. 죄인에게 이보다 더 효과적인 방법은 없습니다. 실수하고 잘못했을 경우에 어떻게 되는 지를 분명하게 보여주면 그러한 행위를 억제하게 됩니다. 그래서 가장 쉽고 빈번한 잘못된 행위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6절에 “만일 너희나 너희 자손이 아주 돌이켜 나를 좇지 아니하며 내가 너희 앞에 둔 나의 계명과 법도를 지키지 아니하고 가서 다른 신을 섬겨 그것을 숭배하면”이라고 했습니다.
‘아주 돌이켜’라고 했습니다. 이는 단순히 일시적인 실수로 나타나는 범죄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신뢰와 사랑을 완전히 저버리고 아주 돌이킴으로 여호와 앞에서 떠나는 적극적인 배신행위를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은혜를 저버리고 다른 신을 섬기는 배교행위를 말합니다. 하나님의 계명을 저버리고 이웃에 대한 악한 말과 행위로 그들을 이용하고 착취하는 죄악된 행위를 일삼는 것을 말합니다. 또한 이러한 죄를 저지르고도 회개하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즉 그 양심에서 일어나는 경고의 메시지와 보내신 하나님의 선지자를 통한 추상같은 선포에도 불구하고 돌이켜 회개하지 않는 심각한 상태를 말합니다. 그렇게 되면 이 땅에서 끊어지며 속담과 이야기거리가 된다고 했습니다.
7절에 “내가 이스라엘을 나의 준 땅에서 끊어 버릴 것이요 내 이름을 위하여 내가 거룩하게 구별한 이 전이라도 내 앞에서 던져 버리리니 이스라엘은 모든 민족 가운데 속담거리와 이야기거리가 될 것이며”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끊어진다’는 말은 계약을 파기한다는 뜻으로 그 대상을 진멸하고 멸망시킨다는 능동적인 심판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공의로운 분노하심이 나타난다는 말입니다. ‘거룩하게 구별한 이 전’도 던지신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던지다’는 말은 ‘내어쫓다’, ‘이혼하다’는 뜻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과의 관계를 명백하게 단절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너무나도 사랑하셔서 자신의 이름을 두시며 거룩하게 만드신 성전과도 단절하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실제로 솔로몬의 성전은 우상숭배와 같은 가증한 범죄로 인하여 B.C. 586년에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에 의하여 약탈되고 훼파되었습니다. 또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고향에서 쫓겨나 이방 땅에서 유리하고 방황하는 포로신세가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의 신세는 수많은 나라와 민족들에게 ‘속담 거리와 이야기거리’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세상의 수많은 속담과 이야기를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한 속담과 이야기는 우리에게 흥밋거리와 교육적인 소재가 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명령과 법도를 지키지 아니하여 자신들의 땅에서 쫓겨나고, 아름답게 지은 성전이 돌위에 돌하나 남지 않도록 파괴되는 이야기는 불신자들에게는 흥미와 조롱으로 이야기거리가 되고, 신자인 우리에게는 타산지석의 교훈이 되는 이야기거리가 됩니다.
8절에 “이 전이 높을지라도 무릇 그리로 지나가는 자가 놀라며 비웃어 가로되 여호와께서 무슨 까닭으로 이 땅과 이 전에 이 같이 행하셨는고 하면”이라고 했습니다.
솔로몬의 성전이 가지고 있는 명성만큼이나 그 성전이 훼파되었을 때에 주는 충격은 큰 것입니다. 아름답고 화려한 건축물이자 여호와의 임재가 있는 거룩한 솔로몬의 성전이 이처럼 훼파되어 무너진 이유가 무엇이냐는 말은 이스라엘 민족을 제외한 모든 이방인들에게는 조롱과 비웃음, 그리고 호기심의 대상이 됩니다. 저들이 그 원인을 몰라서 물은 것이 아닙니다. 누구라도 쉽게 그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비록 하나님을 섬기지 않는 이방인이라도 분명하게 알 수 있을 만큼 하나님의 명령과 경고가 분명하고 반복되어 주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어떤 핑계를 댈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어지는 9절의 대답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대답이 아닙니다. 이방인들의 말입니다.
“대답하기를 저희가 자기 열조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신 자기 하나님 여호와를 버리고 다른 신에게 부종하여 그를 숭배하여 섬기므로 여호와께서 이 모든 재앙을 저희에게 내리심이라 하리라 하셨더라”고 했습니다.
솔로몬의 성전이 왜 이렇게 처참하게 되었는가에 대한 대답은 굳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물어볼 필요도 없다는 말입니다. 세상의 모든 민족과 백성들이 다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자기 하나님 여호와를 버리고 다른 신을 숭배하여 섬기므로’라는 명백한 대답이 주어집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열조들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신 신실하고 능력이 있는 참된 신이신 여호와를 버린 죄악 때문입니다. 또한 ‘다른 신에게 부종하여’라고 했습니다. 이는 다른 신에게 적극적으로 섬기는 모습을 말합니다. 일제 강점기에 고문과 협박과 위협으로 어쩔 수없이 신사참배한 것이 아니라 먹고 살며 출세하기 위하여 시키기도 전에 먼저 자발적으로 신사참배한 모습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살아계신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모든 재앙’을 내리신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 모든 것이 다 여호와의 말씀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해야 하며, 그 주신 법도와 율례를 지켜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수많은 사람들에게 흥밋거리가 되고 이야기거리가 된다고 했습니다. 왜 하나님께서 이러한 말씀을 하십니까? 우리를 올바른 길로 인도하시기 위함입니다. 실제로 솔로몬과 대다수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축복된 길로 가지 못하고, 불순종하고 범죄하여 기록된 ‘이 모든 재앙’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만약에 솔로몬과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고 그 법도와 율례를 지켰다면 하나님의 축복을 받고 영영히 그 왕국이 번성하였을 것입니다. 따라서 여호와께서 나타나셔서 말씀하시는 것은 바로 우리들을 멸망길이 아닌 생명길로 올바르게 가도록 하시기 위함임을 알 수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솔로몬이 성전 건축을 비롯한 모든 국가적인 큰 일을 마친 때에 여호와께서 나타나셔서 축복과 재앙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것이 축제의 분위기에 찬물을 붓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곧 다가올 심각한 재앙에 대하여 피할길을 주시는 사랑의 말씀입니다. 인간의 건축물인 성전을 거룩하게 만드실 정도로 우리를 사랑하신 하나님께서 그 성전을 처참하게 파괴시켰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합니까? 성전이나 왕국과 같은 건물이나 외적인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가 가장 중요하다는 분명한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분명하게 적용됩니다. 우리는 도대체 왜 예수를 믿습니까? 아니 왜 하나님께서 우리를 선택하여 주셨습니까? 잠시 머무는 이 세상에서 잘 먹고 잘 살기 위해서 그러셨습니까? 그렇다면 이보다 더 허무한 일이 어디에 있습니까? 죽으면 끝인 이 세상 내 마음대로, 내 꿈과 이상을 이루기 위하여 멋지고 폼나게 살면 되는 것 아닙니까? 영생하는 천국이 없다면 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를 선택하시고 부르시고 연단의 과정을 통하여 훈련시키시는 분명한 이유는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만들기 위함입니다. 우리를 사랑하셔서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전심전력하는 참된 가족이 되시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전에도 오늘도 앞으로도 여호와께서 나타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분명한 사실을 깨닫고 순종해야 합니다. 여호와께서 나타나셔서 말씀하시는 그 음성에 귀를 기울여 듣고 순종해야 합니다. 여호와께서 나타나셔서 경고하시는 그 음성을 가슴에 새기고 실천해야 합니다. 그러면 됩니다. 주신 성경 말씀을 통하여 오늘도 나타나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시고 그 법도와 율례를 어김없이 지킴으로 말미암아 영원히 복된 길을 걸어가시는 경향의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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